3강
AI와 연구 아이디어 만들기
LLM을 아이디어 생성기로 쓰면 평균으로 끌려갑니다. 대신 내 생각을 비추는 거울로 쓰는 방법을 봅니다.
"새로운 연구 주제 열 개만 뽑아 줘"
이 프롬프트를 안 써 본 연구자는 드뭅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개 비슷합니다. 열 개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어디선가 본 것 같고, 그럴듯하지만 내 손으로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프롬프트를 못 써서가 아닙니다. LLM이 하는 일이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LLM은 평균을 비춥니다
기계학습에서 학습의 목표는 복잡한 데이터에서 저차원 표현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저차원이란 간결하고(parsimonious), 쓸모 있고(informative), 일관된(consistent) 표현을 뜻합니다. 딥러닝이 하는 일을 데이터 쪽에서 보면 데이터가 놓인 면, 즉 매니폴드를 모사하는 일입니다.
연구자 입장에서 이 말을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LLM이 내놓는 것은 그 분야 텍스트의 평균적인 표면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주제를 뽑아 줘"라고 하면 그 표면에서 가장 흔한 조합이 돌아옵니다. 흔하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 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열 개가 전부 낯익은 이유입니다. 모델을 바꾸거나 프롬프트를 길게 써도 이 성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는 기억이 엮이면서 생깁니다
뇌과학 쪽에서 보면 아이디어는 어디선가 날아오지 않습니다. 반복된 경험에서 추출된 연관적 지식 구조, 즉 스키마가 만들어지고, 그 스키마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생깁니다. 해마는 여러 사건을 맥락과 함께 묶어 하나의 지식망으로 통합하는데, 서로 다른 개념 사이의 창의적 연결이 기대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해마가 손상된 환자가 새로운 경험을 상상해 보라는 요청에 공간적으로 일관된 장면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보고도 여기에 걸립니다.
그리고 여기에 AI 시대의 함정이 있습니다. 외부 기억에 지나치게 기대면 기억의 공고화가 방해받고, 스키마가 얕게 형성됩니다. 챗봇이 대신 읽고 대신 요약해 준 내용은 내 안에 남지 않습니다. 남지 않은 것끼리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 레슨이 근거로 삼은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원문에서 확인했고, 확인한 날짜는 이 레슨의 lastVerified와 같습니다.
- 저차원 표현 학습 — Buchanan, Pai, Wang & Ma, Learning Deep Representations of Data Distributions (2025). 논문이 아니라 공개 교재입니다: ma-lab-berkeley.github.io/deep-representation-learning-book
- 스키마의 신경생물학 — Gilboa & Marlatte (2017),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21(8):618–631 (PMID 28551107)
- 해마와 상상 — Hassabis, Kumaran, Vann & Maguire (2007), PNAS 104(5):1726–1731 (PMID 17229836)
- 통찰과 기억 — Danek & Wiley (2020), Cognition 205:104411 (PMID 32762872)
- 기억의 역설 — Oakley, Johnston, Chen, Jung & Sejnowski (2025), arXiv:2506.11015. 아직 동료심사를 거친 게재 논문이 아니라 프리프린트입니다. 인용하실 때 그 점을 밝히십시오.
두 단계로 나눕니다
그래서 아이디어 만들기를 두 단계로 나눕니다. 순서를 바꾸면 잘 되지 않습니다.
1단계 — 흡수하기. 읽고 스쳐 지나간 것은 남지 않습니다. 남기려면 능동적으로 파고들거나(active encoding) 체계적으로 훑어야(systematic retrieval) 하고, 읽은 내용을 자기 말로 덧붙여 정교화하면(elaboration) 더 잘 남습니다.
2단계 — 연결하기. 흡수한 내용에 떠오른 생각을 붙여 짧은 단위로 적어 두고(atomic notes), 그 조각들 사이에 링크를 겁니다. 아이디어는 조각이 아니라 링크에서 나옵니다.
AI는 두 단계 모두에 붙일 수 있지만, 붙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1단계에서는 읽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말로 꺼내게 하는 데 씁니다. 2단계에서는 연결의 후보를 넓히는 데 씁니다. 판단은 어느 쪽에서도 넘기지 않습니다.
대화가 요약보다 낫습니다
정교화를 가장 싸게 하는 방법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요약을 시키는 대신, 스마트폰의 음성 대화 모드를 켜고 동료나 대학원생에게 이야기하듯 주제를 풀어놓아 보십시오.
몇 가지가 실제로 차이를 만듭니다.
- 대화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한 번에 완성된 답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되묻고 다시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되묻는 동안 정교화가 일어납니다.
- 역할을 주십시오. "당신은 의료윤리 분야의 연구 조교이고, 내가 주제를 발전시키도록 돕습니다" 정도를 미리 정해 두면 대화의 결이 안정됩니다.
- 아는 영역이라면 자료를 먼저 붙이십시오. 내가 읽은 논문이나 정리해 둔 메모를 붙여 넣고 그 위에서 이야기하면, 평균이 아니라 내 자료 위에서 대화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항목이 이 레슨의 요점입니다. 자료를 붙이지 않은 대화는 평균으로 돌아가고, 붙인 대화는 내 생각을 비춥니다.
직접 해 보기약 25분
앞의 두 레슨에서 만든 질문 파일을 엽니다.
먼저 20분, 말로 합니다. 음성 대화 모드를 켜고 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작은 열린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 "이 질문이 왜 아직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같이 따져 보자." 요약을 시키지 말고, 내가 설명하고 되묻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다음 5분, 손으로 씁니다. 대화 내용을 정리하지 말고, 대화 중에 내 입에서 나온 문장 가운데 다섯 개를 골라 각각 한 줄짜리 메모로 적습니다. AI가 한 말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어야 합니다.
메모 다섯 개 사이에 연결선 세 개를 긋고, 각 선 위에 관계를 한 단어로 적습니다(예: 원인, 반례, 전제, 같은 대상).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덧붙입니다. 이 중 AI가 먼저 말한 것이 있다면 표시합니다. 표시된 줄은 이미 평균에 있는 생각이므로, 아이디어의 후보에서 잠시 내려놓습니다. 남은 줄이 여러분의 출발점입니다.
메모와 연결선은 앞 두 레슨에서 쓰던 질문 파일 아래에 이어 붙여 저장합니다. 질문과 그 질문이 나온 자리가 한 파일에 함께 있어야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쓸모가 있습니다.
연구에 적용하면
LLM은 아이디어 생성기가 아니라 평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거울로 쓰면 내 생각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고, 생성기로 쓰면 평균으로 끌려갑니다. 아이디어는 흡수한 것끼리 연결될 때 생기므로, 읽기와 정리를 통째로 넘기면 연결할 재료가 남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듭니다. "역할을 주라"는 조언은 정말 효과가 있는가? 다음 레슨에서 그 미신을 실험으로 확인합니다.